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코스

이곳에서 자연인이 되고 싶어지는 경치가 아름다운 충북 단양의 숨겨진 명소 죽령산신당과 죽령폭포의 모습과 가는 길 입니다.

반응형

 

죽령은 높습니다. 소백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는 데다 해발 1357m 제2연화봉과 해발 1315m 도솔봉 사이에서 해발 689m로 단양 땅과 영주 땅을 잇고 있어서 높습니다. 동시에 죽령은 깊습니다. 삼국사기에 158년 3월에 열렸다고 또렷이 적혀 있으니 2000년이나 되어서 깊습니다. 한때는 고구려와 신라가 각축을 벌인 길목이었고, 한때는 한양과 영남 지방을 잇는 주요 길이었고, 지금은 고속도로도 철도도 땅속으로 관통하고 있어서 그저 호젓한 고갯길입니다.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휙 통과해 버릴 수 있는 죽령을 고갯길로 한번 넘어 보았습니다. 소백산을 넘는 해발 689m 고갯길 치고는 그리 험하지 않아서 고마웠습니다. 이런 높고 깊은 고갯길을 훌쩍 넘어 버리기만 하면 예의에 어긋날 것 같아서 두 곳에 들렀습니다. 죽령산신당과 죽령폭포입니다. 모두 죽령 고갯길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곳입니다. 먼저 죽령산신당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죽령 고갯길을 벗어나서 죽령산신당으로 가는 길은 짧기는 하되 크게 경사지고 험했습니다. 역시 소백산 산줄기는 제 속살을 호락호락하게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로 갈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간 후 내려서 얼마 걷지 않아 죽령산신당에 도착하고 보니, 이까지 오는 길이 그리 경사지고 험했던 이유를 알겠습니다. 큰 산 몇 기가 죽령산신당을 따르듯 눈앞에 늘어서 있는데 ‘저 산을 다 안 넘은 것이 다행이구나.’ 싶었습니다. 여차하면 제 길을 막아섰을 것 같습니다.

 

 

죽령산신당 뒤로는 범상치 않은 수종의 나무 군락이 신당을 빽빽이 옹호하고 있었습니다. 자리를 잡은 위치도 그렇고, 주변 지세도 그렇고, 둘러싸고 있는 숲도 그렇고 신당 일대로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죽령산신당은 다자구야 할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다자구야 할머니는 험한 죽령 고갯길에 살던 산적을 물리치게 해 준 고마운 분입니다. 이제는 전설이 된 이야기인데요, 그 전모가 이렇습니다.

 

 

옛날 죽령 일대에 큰 산적 무리가 터를 잡고 있었습니다. 산적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고갯길을 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명히 존재하고, 문제도 많이 일으키지만 산세가 워낙 험해서 토벌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할머니 한 분이 와서 관군에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큰아들 다자구랑 작은아들 들자구를 찾으러 산적 소굴로 들어갈 거야. 다 자고 있으면 다자구야 하고 큰아들을 찾고, 덜 자고 있으면 들자구야 하고 작은아들을 찾을 테니까 그리 알아. 다자구야 하면 쳐들어와서 소탕하면 될 거야. 이 할미만 믿어.”

 

그렇게 할머니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고, 산적 소굴까지 들어갔고, 같이 지내다가 두목 생일에 잔치가 벌어져서 모두 취해서 잠들자

 

“들자구야! 들자구야!”

 

하며 떠보니까 깨는 놈이 있어서 술을 더 먹였고, 끝내 아무도 안 깨는 순간이 오자

 

“다자구야! 다자구야!”

 

하며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에 관군이 들이닥쳐서 산적 무리를 일망타진한 덕분에 죽령 일대가 평온해졌습니다.

 

 

이런 할머니인데 나라에서 안 모실 수 없겠죠? 할머니 이름이 무엇이든 ‘다자구야 할머니’, ‘다자구 할머니’로 불리게 되었고, 지금은 죽령 산신이 되어 이곳 죽령산신당에서 편안히 지내고 계십니다. 竹嶺山神之位(죽령산신지위)라는 훈장 같은 위패도 받았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 상정일에 거나한 제사상도 받습니다.

 

 

죽령산신당 이야기는 이것으로 줄이겠습니다. 죽령산신당을 한 바퀴 다 돌아보았으나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산신령에게 딱 어울리는 장소를 골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로 돌아가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죽령폭포로 향합니다. 물론 직선거리로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지 실제로는 엄청 꺾고 꺾고 꺾어서 가야 했습니다. 아래로도 꺾고, 위로도 꺾고, 옆으로는 부지기수로 꺾는데, 솔직히 ‘가지 말까?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길도우미가 가자는 곳에 결국 도착했고, 차를 대고 죽령폭포를 찾아 나서는데, 아니!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이쪽으로는 길이 막혀 있고, 철길 건너편으로 비탈 중턱에 탐방로가 폭포 쪽으로 가고 있네요?

 

 

지도를 열어서 어디서 시작된 탐방로인가 찾아보니 저 아래 용부원이라는 마을에서 죽령계곡을 따라 한참 올라오는 길이었습니다. 돌아가서 다시 오기는 불가능하니 철길 옆으로 조심해서 폭포에 접근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철길인 것 같습니다. 철로에 녹도 많이 슬어 있고, 여기 머문 30분 동안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들어가니까 죽령폭포가 고맙게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느낌상으로는 저 안에 있던 것이 일부러 죽령터널 입구까지 나와 준 것 같았습니다.

 

 

깊은 산속이라 오로지 떨어지는 물소리와 나무가 내는 바람소리뿐이었습니다. 제가 내는 발소리만큼 새소리가 어디인가에서 들려오는데 경계 같기도 하고, 환대 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폭포가 그리 웅장하다, 거대하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심산유곡 한중간에서 쉼 없이 떨어지는 맑디맑은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제가 자연의 일부임을 알겠고, 앞으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만 같아서 행복이 스멀스멀 차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요? 탐방로가 폭포 위로 지나가고 있는데 분명히 탐방로에서 보는 죽령폭포보다 여기서 보는 죽령폭포가 훨씬 멋질 것 같아서 차오르는 행복 빛깔이 조금 더 분홍빛이었습니다. 

 

 

소백산국립공원 안에서 발원해서 맑은 정기를 긁어 모으며 흘러온 물줄기라서 그런지 폭포 아래 잠시 고인 물도 마치 없는 듯 맑았습니다. 이렇게 맑은 물을 본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맑았습니다. 시원하기로는 또 얼마나 시원할까요? 손을 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 손을 대려면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해야 해서 포기했습니다.

 

 

죽령폭포는 죽령계곡 안에 있습니다. 죽령산신당은 죽령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탐방로는 죽령계곡 물줄기를 따라 쭉 어이지고 있습니다. 왜인지 탐방로를 따라 죽령계곡을 오롯이 다 걸은 뒤에야 이번 나들이가 완성될 것 같습니다. 다음번 여행은 날이 좋은 날을 골라서 걷는 죽령계곡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철길을 따라 조심조심 차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번 여정을 마쳤습니다. 스스로에게 ‘다음 이 시간에, To Be Continue(투 비 컨티뉴)’라는 족쇄를 채워 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