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한국사회의 구조변화와 시민운동
1. 한국사회의 구조변화
1) 반신자유주의 국민운동의 방향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금융자유화를 핵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를 창출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예속적인 주변 자본주의 국가들 역시 새로운 세계질서에 조응하는 내부 변화를 겪었다. 경제적으로는 미국
계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전면적 자유화 조치로 대자본의 배타적 권리가 강화되었고, 정치적
으로는 권위주의적 정부가 해체되고 자유주의 민선정부가 정치적 주도세력으로 부상하였다.
물론 이과정은 미국의 세계화 전략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권위주의적인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세계적 차원의 투
쟁이라는 거대한 저항에 기초한 전환이기도 하다. 또한, 경제 자유화와 민선정부를 앞세운 자유주의적 세계화 전략
을 내세웠다고 하여 미국의 패권주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군사적 침공
에 시달리고 있으며 북한과 이란은 핵문제로 미국과 군사적 긴장관계에 놓여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라는 작은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지속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약화되었고 세계 질서는 보다 다극화 되었으며 세계적 차원의 민
주적 힘은 성장하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미국 금융자본의 최대이익을 위한 요구이기도 하지만 자유주의적 세계
지배전략을 기본으로 내세운 것은 약화된 미국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2) 경제적 지배의 전면화, 정치군사지배의 유연화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한창이던 19세기 말 이후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은 제국주의였다. 제3세계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세계 단일 패권국인 미국을 빗대어 ‘ 제국’ 이라는 용어가 공공연하게 부활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가 크게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구식민지 지배 단계와 그 이후 신식민지 지배 단계를 거쳐
왔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질적으로 새로운 양식의 제국주의 지배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신자유주의 지배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적 지배의 전면화와 정치군사적 지배의 유연화로 집약된다. 정치군
사적 지배의 유연화가 곧 제국주의 지배양식의 근원인 폭력성에 기초한 개입주의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식민시기에는 정치 군사적 개입과 지배력을 전면화하고 경제적 지배에서 유연성을 보였다면, 신자유주의 시
대에는 반대로 경제적 지배를 전면화하면서 군사 정치적 지배는 상황에 따른 개입이라는 유동성, 유연성을 채택 했
다는 의미다. 제국주의 지배양식의 전환은 일정 기간 지속되는 새로운 제국주의 지배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구식민지건 신식민지건 제국주의의 식민주의 공통성은 정치, 군사적 지배가 선행하는 것이다. 구식민지 시대는
군사적 직접 지배와 정치적 총독부를 통한 직접 지배방식이었고, 신식민지 지배는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안정하지만
폭력적 지배도구인 군사정권을 통한 군사 정치적 대리지배 형식을 택하였다. 이런 식민지배의 공통성은 정치적 상
부구조의 장악을 통한 경제적 하부구조의 폭력적 재편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제3세계 국가들의 경제 구조를 직접적으로 장악하는 방식을 채
택하게 된다. 즉, 세계적인 자본시장 형성을 매개로 한 자본의 직접 지배를 기본 축으로 하게 된다. 한국에서 외환
위기와 함께 등장한 민선 민주정부의 출현과 미국 군사정책에 있어서의 유연화 전략은 이런 맥락과 맞물려 있는 것
이다. 세계화라는 경제 자체 논리에 의해 제3세계 경제구조를 세계 자본시장의 일부분으로 편입시키면서 정치 시스
템은 이에 평화적으로 연동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가 경제를 위해 이라크 파병을 결
정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경제를 위해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것은 군사 정치적 선택이
경제의 지배관계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식민지들
의 대거 독립이 이루어지는 시기까지를 구식민 시대로, 그리고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 뒤로부터 80년대 후반까
지를 신식민지 시대로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전면화 된 시기는 제3세계 가운데 가장 빠르게 이식된 남미의 경
우가 80년대 중반이며 한국과 아시아의 경우는 90년대 초로 추정된다.
이런 전환은 대략 80년대 말을 분기점으로,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를 통한 냉전 구도 와해라는 외부적인 조건과
더불어 내부적으로 신식민지에서 진행된 민주화 투쟁에 기초하고 있다. 결국 과잉자본으로 재생산 위기에 몰린 금
융자본은 군정의 후퇴와 민간정부의 수립이라는 타협지점을 찾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한 자본
의 직접 지배를 채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제3세계 국가들에서 잇따라 민간정부가 들어선 세계사적 흐름은 민
중 항쟁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신자유주의로 이행되는 필연적 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지난 신식민 시대와 구별되는 신자유주의 지배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제국주의 자본이 직
접 지배 형식을 띠게 된다는 점이다. 금융자본을 주축으로 하여 주변국 경제의 완전한 장악과 IMF나 WTO라는 세
계 기구를 통한 경제의 직접 개입이 그 특징이다. 경제적으로 직접 지배의 형식을 띤다는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시
대는 오히려 구식민 시대와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단 구식민지의 경제 지배와 차이가 나는 것은 경제적으
로 직접 장악된 금융시스템과 주주자본주의 체계를 이용함에 따라 직접소유, 직접고용, 직접경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의 이런 특징 때문에 제3세계 국가들의 100여 년 넘는 운동 흐름은 성격의 변화를 겪게 된
다. 구식민 시기에는 제국주의 군사강점과 정치적 직접 지배가 전면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군사 정치적 지배를 끝내
기 위한 반제 사회운동이 중심을 이루었다. 반면 신식민시기에는 제국주의의 군사적 강점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주
로는 정치적 지배를 담당한 군부정권의 종식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군사지배를 반대하는 반제운동이 결합되는 양상
을 띠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는 경제적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며 이에 따라 세계(미국) 금융자본의 경제적 지
배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중심이 되고 제국주의적인 군사지배와 군사행동을 반대하는 운동이 여기에 결합되는 양
상이 기본적인 흐름으로 된다.
결국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제3세계 국가들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적 예속성을 청
산하는 것이다. 예속적인 세계화를 반대하고 국민경제의 자주성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군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구조가 신자유주의 시대인 것이다.
2. 독점 재벌의 성립과 경제적 예속성
1) 재벌의 배타적 헤게모니 확립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공존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주요 세력은 재벌로 상징되는 거대 독점자본이다. 신자유주의를
거치며 나타난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바로 한국사회가 완전히 독점자본주의화 되었다는 사실이
다. 경제적 측면에서 독점 재벌에게 배타적 지배권이 행사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난 시기 권위주의 정부에 집중
되었던 정치권력이 해체되다시피 약화된 반면 독점재벌의 정치 통제력은 강화되었다. 물론 과거에도 한국의 재벌은
경제적으로는 배타적 권력을 행사하였다. 하지만 이는 권위주의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것이어서 적어도 독재정
권을 상대로는 종속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권위주의 정부 해체 이후에 등장한 자유주의 정부는 세계화와 신자유
주의 정책을 통하여 재벌을 통제할 힘을 스스로 거세해버렸다. 무수히 진행된 공기업 민영화, 은행 민영화는 정부
의 경제에 대한 통제력마저 약화시켰다. 또한 전면적인 금융자유화 조치를 통하여 독점재벌들의 자본 유입처는 정
부통제의 은행에서 주식시장으로 전환되었다. 정부는 재벌을 통제할 실질적 도구를 스스로 제거한 것이다. 몇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가 버렸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독점재벌의 권력화 현상은 경제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정치권력에서도 변화가 발생했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권력 재생산의 강력한 기반은 군부조직이었다. 그리고 재벌은 속칭 정경유착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군부에
대한 은밀한 청탁자 수준의 정치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6월 항쟁 이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부
의 정치 권력화 현상은 해체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를 대신하여 수구 보수 정당과 (주로 정부조직 안의) 미국파 관
료들의 카르텔이 정치권력의 중심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보수정당과 친미적 관료집단이 권력행사의 주체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권력을 재생산해낼 수 있는 힘과 내
부적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이들 보수정당의 권력 재생산 능력은 매우 불안정하여 권력 이동이 잦고 친미관
료의 경우 전문적 개입력은 있지만 독자적 권력 형성 능력은 부재하다. 신자유주의 시대 들어 진정한 권력 재생산
의 담당자는 독점재벌로 봐야 한다. 한나라당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정부가 실질적으로 삼성의 콘텐츠와
자본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리고 관료의 은퇴 코스가 대기업 임원인 것으로 확인 되듯이
친미 관료들의 경제적 은신처는 재벌이 되고 있다. 은밀한 권력 재생산을 넘어서 이명박과 정몽준이라는 재벌의 실
질적 대변자가 정권에 도전하는 순환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재벌이라는 독점자본이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 대한 배타적 헤게모니마저 장악한 실질적 의미의 독점자본주의 국가가 된 것이다.
2) 경제적 예속성
한국사회에서 독점자본의 헤게모니가 정착되었다고 해서 선진국 자본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체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넘을 수 없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식민주의 시대부터 이어져온 ‘ 종속
성’ 혹은 ‘ 예속성’ 이며 형태는 달라졌지만 이 특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속성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신자유주의의 동력인 금융자본이 한국에 기초를 두지 않은,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자본이라는 점이다. 신자
유주의 체제는 독점자본 가운데서도 금융자본이 주도권을 쥐고 산업독점자본이 이에 연합하는 금융독점자본주의 형
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자본은 제국주의 자본이 절대 지배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독점자본은 미국 중심의 금융자본에 대한 예속성에 기초하여 동맹 수준의 산업자본으로서의 지위만을 갖게 된
다. 즉, 국내 자본운동의 주도 세력이 국내 자본이 아니라는 것이고 국내 재벌도 국내에서만 배타적 권력을 행사할
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독점화 과정은 내부 국민경제의 재생산 체계와 분리된 독점화다. 즉, 내수에 기초한 재생산 메커니
즘이 매우 약하고 수출에 기초한 외부적 재생산체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를 이끌고 있
는 앵글로색슨 계열의 신자유주의는 내부적인 재생산체계와 연동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확대로 경제적 정체 내지는
후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 역시 그렇다. 그러나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내수와 수출 사이에 고리가
끊어지고 재벌과 중소기업 사이의 연관 메커니즘이 심각히 손상된 채 오로지 세계 체제 내의 부속품 경제로서 작동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독점자본주의는 예속성을 중요한 특징으로 갖게 된 것이다.
한국사회에 이식된 신자유주의 특징으로부터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기본 과제를 도출해 볼 수 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이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에 대한 의존성, 예속성을 청산하는 과제가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
안에서 신자유주의와 이해관계가 가장 일치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독점재벌 중심의 파행적인 경
제 구조를 청산해 내야 한다.
3. 한국의 민주화 운동
1) 반신자유주의 운동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역사는 30년 정도 된다. 그동안 그 유명한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를 비롯해서 무수한 신자
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이 있었다. 남미에서는 아예 신자유주의 반대를 내건 정부가 집권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
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의 신자유주의화와 양극화에 저항하는 운동이 이어졌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를 대하
는 진보운동의 태도는 그동안 다양한 편향을 보였다. 적극적인 반신자유주의 입장을 보인 경우도 이를 민생의 문제
로만 바라보는 경향도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마치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개량적 영역인 것처럼 대하는 관념적 급진
성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으로도 중대한 시스템 전환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근대 국민국가의 해체와 재편
의 특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본질적으로 국민국가의 재편 방향을 세계 금융자본의 요구에 맞
출 것인가, 아니면 민중적 요구와 입장에 맞출 것인가 하는 체제 변화의 측면과 닿아 있다. 그러므로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한 사회에 잠재된 모순이 응축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면 반신자유주
의 운동의 방향을 바르게 세우는 것도, 사회를 변화시킬 주류적 운동으로 도약시키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의제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민중생존권 보장 운동의 성격을 띤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민
중의 경제생활 불안과 악화를 동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등록금 운동부터 한미FTA 반대 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바로 이 점이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운동을 전개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경제민주화 투쟁이자 정치민주화 투쟁이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양극화 심화로 집약
되는 경제적 불평등을 청산하는 것이 주요과제이므로 경제 민주화 운동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는 비단 경제
민주화라는 성격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자율적인 시장경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이미 확립된 기존
의 민주적 제도를 규제 철폐라는 이름으로 개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민중생존권에 기초한 경
제 민주화 운동을 기본 축으로 진행하되 제도적 개선을 병행하는 정치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다.
예를 들어, 대학등록금 문제의 이면에는 대학 운영의 자율화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초하여 등록금 결정
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포기한 문제가 깔려있다. 그러므로 등록금에 대하여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민주적 제도 개선이 요구되어야 한다. 이는 모든 반신자유주의 운동에서 공통된 필수적 요구다. 한미FTA 반대
운동 역시 궁극에는 조약체결에 대한 인준권을 국회에서 국민에게 돌리는 제도 개선이 연계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
에서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단순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진일보시키는 새로운 수준의 민주
화 운동인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또한 경제 자주화 운동이다. 앞서 말한대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근원에는 제국주의 금융자본
의 투기적 지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제국주의 금융자본으로부터 경제주권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민중생존권
도 경제민주화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 자주화가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핵심이 되는 이유다. 그
러므로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발전 과정을 통하여 필연적으로 경제 자주화 운동으로 전환된다.
경제주권을 회복하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 한국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친미적인 관료, 엘리트
집단의 사회적 지배구조를 청산하는 것이다.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신자유주의 이식에 따
라 이익집단화 돼버린 관료, 엘리트 집단이 한국사회의 중심 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한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경제 시스템은 기대할 수 없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또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남과 북 사이
의 경제 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남북 경제의 교류와 협력은 남이나 북이나 경제
발전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은 분단 고착형 경제교류, 자본 수출형 경
제교류를 지향한다. 한국이 반신자유주의 경제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경제 성장과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남북
사이의 경제 협력이 필수다. 그렇게 볼 때 남북의 통일 문제는 이미 민족적 감성에 기초한 당위적 문제가 아니라
남이나 북이나 생존과 발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남북 간의 경제협력이 통일지향성을 갖자면 상호이익을 증진시키면서도 장기적 시각에서 남과 북을 넘어서 민족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통일연방 경제영역을 대담하게 창출해가야 한다. 통일연방 경제영역의 구축은 단기간의
이익환수를 목적으로 해서는 불가능하며 민족경제를 도약 발전시킬 장기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투기
적 단기 이익에 집중되어 있는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 논리로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원천적으로 반자본 운동의 성격을 띤다. 대자본과 투기적 금융자본에 기초한 시장독
재, 시장전체주의가 신자유주의 근원이기에 한국 내에서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대자본 반대 운동과 투기적 금융자본
반대 운동의 성격을 가진다. 최근 문제가 된 삼성 문제나 론스타 먹튀 문제는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자본과 시장 일반에 대한 반대 운동이 되지는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대자본의 전횡에 대항
하여 중소자본을 지지하는 운동이며 금융자본의 투기적 성격에 반대하여 생산적 산업자본을 옹호하는 운동이다. 그
러므로 반자본적 성격과 동시에 건전한 중소자본과 산업자본을 옹호하는 운동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 불안정과 양극화가 도를 넘어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민생을 들고 나오
는 것이 현재 정치권의 모습이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진보세력의 반신자유주의 운동
경험은 매우 미약하다. 사실 한미FTA 반대 운동을 제외하고는 대중적 차원의 운동이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모든 사회운동이 그러한 것처럼 대중적 참여 없는 운동이 목적한 결과를 이룰 수는 없다. 더욱이 신자유주의라
고 하는 세계적 조류를 꺾는 운동은 문자 그대로 범국민적 동의와 지지 그리고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반신자유주의 운동은 처음부터 가장 완전한 형태로 대중적 참여가 가능한 운동이어야 하며 끝까지 국민적 운동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
국민적 대중운동이라는 것은 참여자의 수와 같은 양적인 차원이 아니라 절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내
용과 형식을 지닌다는 뜻이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국민 가운데 90%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식을 국민적 대중운
동이라 할 수 있다. 즉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틀이 의미가 없이 절대다수의 찬성자와 소수의 반대자라는 구도
의 국민적 대중운동이 되어야 한다.
모든 반신자유주의 의제가 민중생존권과 직결되어 있으며 경제 민주화를 요구한다는 본성상 대중운동은 언제나
가능하다. 설혹 국민적 인식이 부족하여 대중운동화가 지체되는 경우라도 확산하는 시간이 더 요구될 뿐 대중운동
은 필연이다. 이는 한미FTA 반대 운동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이때 중요한 문제는 일부 계급계층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핵심 요구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국민적 이해관계로
확장시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단순 대중운동이 아니라 국민적 대중운동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미FTA 문
제나 대학등록금 문제의 경우 전 국민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로 전환시켜 국민적 공감을 일으킨 반면, 비정규직
문제의 경우 전 국민적 고용안정 의제로 만들지 못해 일부 계층의 문제인양 고립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또한 형식에서는 당연히 평화적 방법이 기본이 되어야하며 나아가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다면 대중적 정서에 기초한
방향조정이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등록금 문제를 놓고도 상한제와 후불제라는 대안이 혼재되어 있을 때 원칙적으
로야 상한제가 더 좋겠으나 국민적 지지와 공감에서 본다면 후불제가 더욱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즉 대중적 요구
에 기초하되 그 수준과 형식 역시 대중적 정서에 기초하여 조정되어야 한다.
국민적 대중운동화 한다는 것이 진보적 지향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진보란 구호 수준에서 관념적 급진
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항상 다수 국민 속에 존재하는 진보라야 그것이 살아있는 진보, 진정으로 현실을 변화시
키는 동력이 되는 진보인 것이다. 예를 들어 후불제 보다야 상한제가 좋고 상한제 보다야 무상교육이 좋다. 그러나
이렇게 관념적으로 급진화될수록 합리성도 떨어져 공감대도 약해질 것이다.
진보적 지향성을 부여하는 것은 요구 수준에서 물질적으로 높고 낮은 문제로 결정되지 않는다. 진보성을 부여하는
것은 경제 민주화와 정치 민주화라는 제도개선의 성과로 나타나야 한다. 제도개선의 방향에서 진보성을 부여하는
핵심은 제도 운용의 주체로 국민의 참여와 견제가 보장되는 것이다. 가령 등록금 후불제라고 해서 진보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후불제라도 이후 사회적 협의에 따라 등록금을 결정하도록 제도 개선을 목표로 하고 이 협의에 시민
사회의 참여를 보장한다면 더욱 진보적일 수 있다.
시민적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위해 필요한 것은 노동자, 농민 등 민중운동과 시민단체 운동, 그리고 정치정당까지를
포괄하는 시민적 연대를 구현하는 것이다. 특히 기층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은 필수적이다. 현재 진보운동은
단독으로 국민적 운동을 벌이기에는 역부족이다. 구호와 운동 방식 등을 자신의 입맛대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
수위를 낮추어 조정해서라도 국민적 연대를 유지하는 원칙을 관철해가야 한다.
2) 한국의 시민사회 운동 전개과정
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 순수한 노조들의 노동조건, 임금개선 등의 시민운동은 6월 항쟁 이후 한국의 민주화가
본격화되면서 정치적 성향을 띠며 그 동안 군사정권으로 억눌려왔던 정치적 욕구 분출의 통로로 변화, 발전되었다.
그 규모에 있어서나,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나, 급격한 확대를 가져오게 된 구조적 원인들은 다음과 점을 들 수
있다.
첫번째 정부와 제도정치의 대의성(代議性)의 왜곡으로 권리옹호(advocacy)적이고 권력비판적인 시민사회단체의 역
할을 증대시켰다. 한국처럼 의회민주주의가 저발전되어 있고 개발독재국가에 의해 왜곡된 조건 하에서는 '정치사회'
의 대의기능이 왜곡(歪曲)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운동조직에 의한 '대의의 대행(代行)' 현상이 나타나
게 된다. 정부가 관료적 저항이건 기득권세력의 저항에 의해서건 시민사회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나아
가 제도정당들이 대의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정부나 제도정당의 대의기능이 비제도적인 시민사회운동
조직에 의해 수행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대의구조의 왜곡(歪曲)으로 인한 대의의 대행(代行)현상이
권력비판적인 시민운동체의 역할을 극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80년대 말 이후 시민운동조직의 다양한 발전 및 그
들이 실제 동원력에 비해 '과잉대표성'을 갖는 것은 바로 제도정치의 대의의 '지체'(lag)에서 비롯되는 '대의의 대행'
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권위주의체제 하에서 고착된 국가-시장-시민사회의 불균형 때문이다. 시민사회 및 시민사회단체들의 새로
운 자정력(自淨力)으로 국가 및 시장의 합리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대적 필요성이다. 민주화란, 개발독재 속
에서 왜소화되어 있던 시민사회가 정상화되고 그 힘에 기초하여 국가와 시장의 왜곡된 모습들이 교정되어 국가-시
장-시민사회의 올바른 관계가 복원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시대에 국가는 군부권위주의국가로 왜곡되어
있었다. 시장은 재벌 중심적인 천민적 구조로 왜곡되어 있었다. 또한 자연스럽게 국가권력엘리트들과 재벌 간에는
정치적· 경제적 유착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은 자신에 대한 도전자들을 반공이라는 이데올로
기로 제압하였다. 이 결과로 시민사회는 국가권력에 의한 정치적 억압에 의해, 그리고 시장의 천민적 논리에 의해,
또한 극우반공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되어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국가의 억압적 논리, 시장의 영리논리는 반공
주의와 성장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면서 시민사회의 자발적 논리로 내재화되어있었다. 바로 이러한
상태에서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반영하면서 시민사회운동이 성장하여 왔고, 여기서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균형화를
향한 압력을 행하는 시민운동의 역할이 시대적 요구와 합치하게 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민주화가 본격화되면
서 국가와 시장의 '동맹' 체제의 개혁을 위한 사회적 압력이 강화될 필요가 커지게 되었고 여기서 정부권력과 재벌
등의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운동의 사회적 요구가 강화되게 되었다. 국가와 시장의 '동맹'구조를 해체
하고 새로운 관계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바로 다양한 시민적 운동단체들의 역할을 부각시키게 되는
것이다. 98년 소액주주운동이 크게 주목을 받았던 것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운동으로서의 성격도 있
지만 재벌개혁 및 시장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경실련이 벌린 부동산 투기에 대한 문제제기,
IMF이후 참여연대가 벌린 재벌개혁운동에 대한 국민적지지, 비록 대안이 없지만 정부와 제도정당을 비판하는 것만
으로 도덕성을 갖게 되는 현상 등은 바로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셋째, 공공영역, 특별히 언론을 통한 여론 반영기제의 왜곡성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국
가와 시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정상적인 '공공영역'이 형성되고 작동할 때 가능하게 된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
견이 표출되고 경쟁· 수렴되는 공적인 장으로서의 공공영역이 권위주의체제 하에서는 부재하였고 여기서 시민운동
기구들은 공공영역의 존재화(化)와 정상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처럼 언론이 '불구화'되 어 있는 상황 속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대의 기구적 역할이 과도기적으로라도 강화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언론의 불구화는 바로 언론기관이 권력기구 혹은 시장기구(재벌언론이나 언론재벌)로 작동하는 데서 기인한다. 바로
이러한 언론, 광의의 공공영역의 불구화가 시민운동적 단체들의 역할을 증대시키게 되고 이는 중단기적으로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한국 민주주의의 불완전성은 시민들의 자조적이고 권리옹호적인 행동이 없이는 개인의 권리와 이익이 충분
히 보호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권리 옹호적이고 권리실현적인 단체의 활동을 증대시키게 된다고 생각된다. 비
록 80년대처럼 국가권력의 '원시적' 폭력은 감소하였지만,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적 특성은 여전히 개인생활에서의
다양한 권리침해 가능성을 상존시키게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민주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다양한 운동적 단체들이
확대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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